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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상)> 감상문
분류 수요일팀
작성자 물리학과 정동원
날짜 2019.10.01
조회수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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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설에 나는 사과를 팔았다. 대규모 농 수산물 센터에서의 과일 판매는 동네 마트나 대로변의 과일 트럭과 같은 여유나 낭만은 없었다. 정신없이 사과 상자를 쌓고 나르며 택배 운송장을 붙이고 옮겼다. 계단 아래에는 귤 껍질, 썩은 사과와 각 종 변변치 않은 과일들이 뒹굴었다. 달큼하게 나는 냄새는 발효에 의해 시큼함이 더해져서 내 몸에 배었다. 나는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들을 버텼다. 하루하루 마치는 것에 만족을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일 수를 보며 안도를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친구들에게 푸념도 하고 가족들에겐 대단한 일을 하고 온 양 굴었다.

 

값진 경험이었다. 머리를 쓰는 일을 할 때엔 막막하고 답답했던 생각들이 단순한 행동들로 나를 채워가자 명료해졌다. 흔히 말하는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다'고 하는 것과는 달랐다. 생각 할 겨를도 없었고 온전히 일에 몰입했을 뿐이다. 사과의 흠을 찾기 바빴고 손님들의 짐을 들어주고 옮겨주며 과일들을 조심스레 다루고 닦았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머리 싸매고 했던 고민들은 녹아내렸다.

 

한탸 역시 책을 도서관에서 열심히 읽어 교양을 쌓은 부류는 아니다. 주어진 일을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얼떨결에 얻어진 것이었다. 다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푸념하지 않는다. 다른 것으로 해소 하지도 않고 그 일이 끝나기를 고대하지도 않는다. (은퇴 후 압축기와의 노후를 기대하지만 그것 역시 일의 연장선이라 생각한다.) 나는 여행자였고 그는 원주민이다. 나와 그는 일에 열중했고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나는 그 때 뿐이었다. 집에 가면서 유투브로 과일 잘 파는 법 과 같은 것을 찾아보지는 않았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며 기대감에 가득 차 침대에서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일을 하였지만 일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는 나아가고 있고, 나는 거기까지였다.

 

표지를 본 순간 이미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이 그냥 끌려서 선택한 책이었지만 역시 2년전의 나도 똑같이 끌려서 읽었었나 보다.

그 당시에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고, 지금 내가 직업을 고려함에 있어서도 노동의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 영향을 많이 준 책이었다. 첫 장과 두 번째 장, 그리고 세번째 장으로 넘길 때 마다 비슷비슷한 이야기 인 것 처럼 느껴졌다. 작은 화두를 던지더라도 그 역시도 곧장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읽어도 읽어도 비슷한 이 책에서 왜 나는 기분이 좋아지고 흥분될까 생각해봤다. 열정이었다. 자서전식 열정의 흔적은 더이상 아무런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감동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에세이보다도 다이어리와 같은 느낌의 이 소설에서 열정은 이유없이 행복해 보이는 친구의 속내를 보여주는 듯 했다. 비슷한 이야기와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예찬과 고백 덕분에 그의 행복 뿐만 아니라 고통에서도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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