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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기홍 단국대 총장
작성자 방지웅
날짜 2007.10.24
조회수 513
“최고의 시설에 걸맞은 콘텐츠 마련할 것” ‘전공교육인증제’ 국내 대학 처음으로 도입 전인교육 내실화로 ‘소통’능력 뛰어난 교양인 길러내

마무리 단장이 한창인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탁자와 소파 외엔 집기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사무실에서 권기홍 단국대 총장과 마주 앉았다.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이던 그는 2003년부터 1년간 노동부 장관으로 노사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토론을 좋아해 갈등이나 문제 해결엔 적임자였다. 인터뷰 내내 여러 분야의 예를 들면서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2005년 단국대 총장에 부임해 난마처럼 얽혀 있던 학교 이전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고 이제 새 출발의 선상에 섰다.

“단국대가 이전하는 것은 질적 도약을 위해서 불가피했습니다. 한남동 캠퍼스에서는 공대 교수들이 프로젝트를 따와도 실험기자재를 놓을 곳이 없어서 애를 먹을 정도였습니다. 진작 옮겼어야 했는데 참 곡절이 많았습니다.”

‘서울 소재 대학’이라는 수식어가 중요한 시대에 제2캠퍼스가 아닌 본교 자체가 서울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방대로 인식되면 우수한 신입생 유치가 어려울까 봐 걱정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2005년 고교생 여론조사를 해보니 죽전캠퍼스를 지방으로 인식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습니다. 분당이나 일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사는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 이전이 기정사실화된 작년과 올해의 신입생 성적이 크게 오른 것을 보고는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1994년 이전을 결정한 뒤 한동안 학생과 교직원의 반발이 있었다. 학생들과 대화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전 결정이 알려지는 바람에 불신의 골이 더 깊어졌다.

“대학 운영이 폐쇄적이던 것이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공청회를 통해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했습니다. 이사장·총장·학생대표가 참석해 4시간씩 토론을 하고 그것을 인터넷으로 방송했지요.”

그 결과 학생들의 여론이 눈에 띄게 변해 학생회 선거에서 이전 결사반대를 외치던 쪽이 물러나고 발전적 이전을 주장하는 학생회가 들어섰다. “학교건 기업이건 국가건 투명하게 공개되면 서로 공감하는 영역이 커집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의혹과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토론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면 같은 근거에 의해 판단하므로 이견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2005년 총장에 임명돼 죽전캠퍼스 시찰을 왔을 땐 짓다가 만 콘크리트 블록만 흉물스럽게 방치된 채였다.

“기본설계를 한 지 10년이 됐지만 다시 할 수 없어 내부 설비를 최첨단으로 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 결과 정보통신 설비가 국내 대학 중 가장 잘된 캠퍼스로 탄생한 것입니다.”

권 총장은 “시설은 최첨단이지만 그에 걸맞은 콘텐츠, 즉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게 중요하다”며 “이제 대학의 핵심 콘텐츠인 교육과 연구 수준을 높이는 데 모든 역량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5개 연구분야를 집중해서 국제적 수준에 올려놓는 게 목표지만 대학본부가 더 중점을 둘 부분은 교육입니다. 교육과 연계되지 않은 연구는 대학이 아닌 연구소의 몫입니다.”

전공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서 전공교육인증제를 도입했다. 대학 자체적으로 전공교육인증제를 실시하는 것은 단국대가 처음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나 공학교육원의 인증제는 결과만 평가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한 시점에서 취업률과 교수 인원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므로 열악한 조건에서도 큰 성과를 내는 학과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학내 인증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는 방식이므로 발전의 동기 부여를 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평가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교수들의 호응은 의외로 높았다. 학생 상담, 새로운 과목 개발 등은 평소에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기 마련인데 인증제를 계기로 동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본 틀은 대학본부가 제공하고 어떤 내용을 평가 받을 것인가는 학과별로 자체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그 결과 학과별로 수백 쪽에 달하는 평가 매뉴얼이 작성됐다. 권 총장은 대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양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전공교육은 필수적이지만 남이 못하는 것을 한다는 것뿐이지 그것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공만을 위해서라면 학원식으로 단기에 압축해 배우는 것이 효율적일 겁니다. 교양은 소통의 무기입니다. 소통이 안 되면 남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바로 남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교양교육인 겁니다.”

교양교육은 대학본부가 인재개발원을 통해 직접 관장하고 전임교수는 일절 두지 않았다. 교양교육을 강화한다고 전임교수를 두는 다른 대학과는 정반대의 방식이었다.

“역사·철학·문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교양교육의 틀을 짜면 결국 교양이 아닌 또 하나의 전공 기초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전공자는 학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지만 교양은 소통의 무기이므로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단국대는 교양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32학점의 교양필수과목을 지정했다. 이것도 선택과목이 늘어나는 다른 대학과는 다른 흐름이다.

“선택 중심으로 가면 흥미있는 인기 과목 위주로 교육이 흐릅니다. 예를 들어 한때 대학가에 ‘성(性)과 사회’라는 과목이 인기가 있다가 시들해지자 피임과 위생을 다루는 ‘섹스올로지’ 과목이 생겼습니다. 나중에는 ‘기생열전’이 생기더군요. 그런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기본적 교양교육이 등한시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기업들이 채용시험 때 합숙을 시키고 노래방·술자리 등 일상의 공간을 활용해 테스트를 하는 것도 교양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서다. 권 총장은 “그런 테스트에서 돋보이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양교육”이라며 “와인 전문가 과정처럼 학문적 기반은 없지만 소통의 무기가 될 수 있는 비교과 교양교육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국대는 기숙사가 충분히 확보되는 2008년이나 2009년쯤부터 비교과 교양과목을 도입할 계획이다.

“비교과 교양과목은 학기 중이 아닌 방학 때 학점과 상관없이 시행할 것입니다. 방학은 노는 기간이 아니라 교과교육을 중단하고 비교과 교육을 하는 기간입니다.”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언어는 가장 기본적인 교양이지만 말을 잘한다고 무조건 남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의 내용과 태도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서양 사람은 칵테일 파티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2~3시간씩 얘기하지만 우리는 그런 훈련이 안돼 있습니다.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영화·연극·음악·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가 풍부하면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할 가능성이 커지는 겁니다. 바로 그게 교양의 힘이지요.” ▒


/ 박준동 기자 jd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