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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籍’은‘敵’일까? 아닐까?(2013년 9월 23일)
작성자 문예창작과 박덕규
날짜 2020.11.20
조회수 203
URL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5317 
언론사 : 교수신문 
기사게재일 : 2012-05-29 
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籍’은‘敵’일까? 아닐까?
2012년 05월 29일 (화) 17:53:54 강민정 단국대 박사후연구원·문예창작  editor@kyosu.net

 

   
  강민정 단국대 한국문화기술연구소 박사후연구원·문예창작  
 
2006년 박사과정에 들어오면서 연구소에 발을 들여 놓았다. 박사논문을 쓰고 졸업한 지 1년이 지나고 지금까지도 나는 연구소 생활 중이다. 그러다보니 뭐랄까. 늘 하고 싶은 공부에다가 지금 이 순간 해야만 하는 공부 하나를 더 떠안고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다. 연애로 치면 양다리인데, 이게 양다리가 아니라 거의 문어다리 수준에 가깝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처럼 ‘문어다리 식 학문탐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어느 정도 나의 성격 탓도 있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경험만큼 중요한 건 없다’며 모든 경험을 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낙천적 운명주의자. 때문에 나는 아직 혼란스럽다.

현대시를 전공하는 나는, 지난 7년간 연구소에서 진행한 문화콘텐츠 관련 사업, 고려인 문학 관련 사업을 거쳐 북한 문화예술 관련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글을 읽으며, 누군가는 ‘박사과정 연구보조원’의 경우, ‘연구 과정에서 얼마만큼 참여한다고’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연구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닌 연구소는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박사과정 연구보조원들도 연구원들을 도와 거의 연구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한다. 그러다 보니 그간 나의 ‘학문탐구’는, 연구소에서 진행해온 연구사업과 별개의 무엇일 수는 없었다. 특히 박사논문을 쓰는 동안 전공인 남한의‘현대시’를 부여잡은 상태로, 사업으로부터 수집한 방대한 북한 자료들을 동시에 읽어나갈 때 느끼는 편차가 꽤 커서 힘들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구 사업은 꼼꼼한 자료수집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아마‘연구자’라면 누구나 이때 자연스레 연구대상을 훑어보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도 고려인의 애환이 묻어나는 『레닌기치』와 북한사람들의 그나마 굴절된 내면이 드러나는 『조선문학』을 열어본 이상 이들에게 관심 두지 않는 것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보다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연구소에 ‘적’을 두었다면, ‘문어다리 식 학문탐구의 세계’로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그렇게 몇 편의 소논문, 그러니까 콘텐츠, 고려인, 북한 관련 소논문들과 한 편의 박사논문을 쓰며 7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평균적으로 성실히 일했고 성실하게 논문을 써온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와 결과만 놓고 생각해보면 ‘문어다리 식 학문 탐구의 세계’는 빠른 시간 안에 학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모두 ‘논문’으로 치환해야만 하는, 즉 그래야만 실적으로 인정하는 한국의 연구 풍토에서 별로 쓸모없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다시 말해 폭 넓은 연구 ‘경험’은 다소 전략이 필요한 어떤 연구 실적 쌓기와 그리 잘 맞지 않는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몇 개 더 짊어지고 힘겹게 걸었으나 세상이 정해놓은 식에서 보면 멀리 가지는 못한 꼴이다.

그러나 낙천적 운명주의자인 ‘나’는 인간사를 ‘관통’하는 ‘인문학’의 무엇에서 ‘문어다리 식 학문 탐구의 세계’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여전히 믿고 싶다. 아니 무언가 그것만의 깊은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고 싶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다. ‘연구소’란 ‘籍’은 연구자에게 ‘敵’일까, 아닐까. 사실 연구소란 ‘적’은 내게 생각보다 많은 경험과 추억을 주었다. 게다가 다행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인간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당위를 준 것도 사실이다. 학문 탐구의 열정을 여러 사람과 함께 소통하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학문 탐구의 영역에서 사실 ‘폭식’으로 ‘체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소화’되는 기간이 보다 길 수 있다면 어떨까. 여전히 대답은, 한국 연구풍토의 개선에 기댈 수밖에 없겠다. 조금 더 실적 만능 주의라는 연구풍토를 쇄신해줄 수 있다면, 또는 하나의 연구 사업을 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학문후속세대에게 ‘연구소’라는 ‘적’은 어쩜 지금 이상의 더 큰 가치를 지닐지도 모를 일이다.


강민정 단국대 박사후연구원·문예창작
단국대에서 현대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