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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한국 문학, 세계로 향할 직항로를 꿈꾸며(2014년 9월 22일)
작성자 문예창작과 박덕규
날짜 2020.11.20
조회수 583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04388.html 
언론사 : 조선일보 
기사게재일 : 2014-08-27 

입력 : 2014.08.27 03:03

 박덕규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소설가
 박덕규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소설가
8월 들어 꼼짝없이 서울에만 있다. 방학인데도 이 대도시의 한여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

지난 7월 후반 2주간 로스앤젤레스(LA)에 있었다. 내가 속한 대학의 국제문예창작센터가 LA 한인들을 대상으로 문학 강좌를 열었고 나는 그 첫 강사로 파견됐다. LA에 한인 문인이 많고 지망생도 많지만 8일 동안 연이어지는 이 강좌에 누가 올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낮, 밤 두 개 반에서 각 45명의 수강생이 몰렸다. 첫날부터 목청을 돋우느라 땀깨나 흘려야 했다.

시, 소설, 수필 등 시대별 대표 작가와 작품을 인용한 교재를 파일로 만들어 갔다. 대체로 광복 후 한국 문학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고 그 작품들을 읽고 감상하면서 창작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사이사이 어려운 문학 용어도 설명했다. 이념 대립이 심한 한국 문학인의 상처를 전할 때의 숙연함, 모호한 수사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고, 에로틱한 시구에 당혹해하는 표정…. 그중에는 등단 작가도 있었고 그냥 호기심에서 온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갑자기 쏟아지는 작품과 그 사연들을 LA에서 보기 힘든 소나기나 함박눈을 맞듯 대하고 있었다.

87세 남편이 운전해 주는 차로 수강생 전원을 위해 야참까지 준비해오는 전직 아나운서, 34년 전 이민 와 두 아들 키우며 시를 써온 연금생활자 등 80대 노인부터, 글쓰기로 치명적인 암을 극복하고 있는 환자, 인생의 마지막을 소설 쓰기로 채우려는 전직 법조인, 의사, 교수, 간호사, 상담사, 동시통역사, 기자, 종교인, 10대 아들과 동행한 어머니, 영어 발음이 더 익숙한 이주 1.5세대…. 심지어 편도 3시간 걸리는 데서 차를 몰고 와 두 시간 반 동안을 졸지도 않고 문학을 만나고 가는 이런 수강생들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문학도 세계화 참 많이 했다. 수많은 작가가 나가고 들어온다. '수출 대박'을 한 작품도 있다. 그런데 우리 문학이 간절할 뿐 아니라, 그걸 안고 죽도록 살면서 자손에게 물려줄 한국인의 '세계'가 있다. 그게 한국 문학의 영역이자 세계로 가는 가장 확실한 직항로 아니겠나.

나는 그 직항로를 비로소 확인한 기쁨으로, 이 직항로에 가장 많이 탑승할 고객의 설렘으로 이 여름을 잘도 견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