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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의 시 한편] 6월 김수복(1953~)(2014년 9월 22일)
작성자 문예창작과 박덕규
날짜 2020.11.20
조회수 231
URL :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8.asp?pk_no=1121276 
언론사 : 대전일보 
기사게재일 : 2014-06-10 

저녁이 되자 모든 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추억 속에 훤히 불을 밝히고

유월의 저녁 감자꽃 속으로

길들은 몸을 풀었다

 

산 너머로, 아득한 양털구름이

뜨거워져 있을 무렵,

길들은 자꾸자꾸 노래를 불렀다

 

저물어가는 감자꽃 밭고랑

사이로 해는 몸이 달아올라

넘어지며 달아나고, 식은

노랫가락 속에 길들은

흠뻑 젖어 있었다

 

유월, 모내기 끝난 논에서는 이제 어린 모들이 땅내를 맡으며 서서히 줄을 맞추어 선다. 푸른 이마로 까마득한 허공을 이고 섰다.

 

그 왕성한 뿌리의 힘은 조만간 논바닥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 유월 들녘에는 온통 감자꽃들이 푸짐하게 피어 있다. 감자밭 초록 줄기와 이파리 사이에 반짝 솟은 자줏빛 꽃 속으로는 길들이 달려와 몸을 푼다. 그런 즉 산 너머에서 양털구름도 이 지상 일들이 궁금한 것이다. 아득하게 이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풍경이다.

 

이제 대지 위로 익어가는 유월의 물결 속에는 우주의 작은 생명이 함께 벌이는 합창. 그 힘찬 맥박으로 밭고랑에 뜨거운 기운을 지피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흔적이 사라지고 문명의 흐름이 비워지면 자연은 그 생명의 복원력으로 너른 대지를 끌어안는다.

 

그곳으로 신이 난 길들이 자꾸자꾸 노래 부르며 달려간다.

 

보아라. 저문 감자꽃 밭둑 사이로 몸이 온통 달아오른 태양 질펀하게 열기를 풀어놓았다. 대지와 태양의 음양이 뜨거운 만남으로 대지엔 축복이 내린다. 우리의 한 해는 풍요와 다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유월은 초록빛과 붉은 태양이 뒤엉긴 고흐풍 강렬한 톤으로 이글대고 있다. 그 뜨거운 흙의 숨결 살아올라 유월의 대지를 육감의 세계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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